
목차
- 나는 누구인가?
- 실재란 무엇인가?
- 누가 통제권을 쥐고 있을까?
- 나는 어떻게 결정할까?
- 나는 네가 필요할까?
- 미래에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될까?
목차를 보면 "나는 누구일까", "실재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결정할까" 등, 마치 철학적인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뇌과학은 어떻게 답변할까요? 지금부터 하나씩 읽고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나는 누구인가?
우리의 뇌는 다른 동물의 뇌에 비해 더 '미완성'인 상태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여기서 미완성이란 신경망이 덜 배선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동물들의 뇌는 미리 정해진 경로에 따라 회로가 형성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태어나서 단기간에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리 마련된 뇌'는 특정한 생태계에서는 유효하지만 그 환경을 벗어나면 생존과 번식의 가능성을 크게 줄어든다고 합니다. 반면 인간의 뇌는 미완성인 상태로 '생후배선' 되기 때문에 환경과 삶에 경험에 의해 다양한 모습을 갖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생후 배선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연결과 가지치기(유년기)
갓 태어난 아기의 뉴런들은 서로 이질적이며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아기가 생후 2년 동안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뉴런들이 엄청나게 빠르게 연결되기 시작한다. 아기의 뇌에서는 매초 무려 200만 개의 새로운 연결, 곧 시냅스가 형성된다. 두 살이 된 아기는 100조 개가 넘는 시냅스를 지녔다. 이 개수는 성인이 가진 시냅스의 두 배다. 이제 아기의 시냅스 개수는 최대치에 도달했으며, 그 개수는 앞으로 아기에게 필요한 개수보다 훨씬 더 많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연결들의 만발 대신에 신경학적 '가지치기'가 새로운 전략으로 채택된다. 당신이 성숙하는 동안, 당신이 가진 시냅스들의 50퍼센트가 감축된다.
아이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뇌가 발달하는 과정이란 새로운 세포들의 성장이 아닌 '연결'과 '가지치기'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이런저런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면서 생후 2년 동안 최대치의 연결을 형성합니다. 새로 형성된 회로들 중 필요한 것은 강화되고 불필요한 것은 약화된다고 합니다. 가지치기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인이 되면 뇌세포 간의 연결 개수는 반으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지금의 우리들은 어쩌면 가능성을 쳐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당신이 지금의 당신으로 되는 과정은 이미 있었던 가능성들을 쳐내는 과정이다. 당신이 지금의 당신으로 된 것은 당신의 뇌 속에서 무언가가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가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전체 생애주기를 거치는 동안 지속적으로 변화들을 겪지만 큰 변화를 겪는 구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년기에는 주변 환경에 의해 인생 최대치의 연결을 형성하고 가치치기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0대를 거치면서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겪게 된다고 합니다.
불균형적인 성숙(10대)
유년기가 끝나고 사춘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다시 한번 과잉 생산의 시기가 찾아온다. 앞이마엽 피질에서 새로운 세포들과 연결(시냅스)들이 형성되고 새로운 경로들이 생겨난다. 이 과잉 생산에 이어 약 10년 동안 가지치기가 진행된다. 10대 시절 내내, 비교적 약한 연결들은 제거되고 비교적 강한 연결들은 재강화된다. 이 솎아내기의 결과로 10대 시절 동안 앞이마엽 피질의 부피는 매년 약 1퍼센트 감소한다. 10대 시절에 이루어지는 뇌 회로들의 형성은 우리가 성인으로 되는 과정에서 배우는 교훈들의 기반이다.
유년기가 1차 성장기라면 사춘기를 2차 성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의 전두엽의 연결이 한 번 더 크게 증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팔, 다리, 몸과 같은 신체의 성장이 동시에 고르게 성장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뇌에서 일어나는 연결의 증가도 모든 구역에서 동시적으로 고르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10대의 뇌는 사춘기를 거치면서 동기부여나 쾌락과 관련된 '도파민 회로'는 성인 수준으로 빠르게 연결이 형성되지만 충동을 자제하는 것과 관련 깊은 '배외측 전전두엽피질'은 20대 초반이 되어서도 성숙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즉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불균형적인 뇌의 성숙(연결, 가지치기)이 사춘기의 특징을 상당히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경 가소성(성인기)
우리의 뇌는 성인기 이후에도 끊임없이 변한다고 합니다. 이 책은 '경험은 뇌를 변화시키고, 뇌는 그 경험을 보존한다'라고 말합니다. 그 예로 수많은 지리적 정보를 기억하고 경로를 예측해야 하는 런던의 택시 기사들의 해마가 눈에 띌 정도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숙련된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왼손 손가락들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는 과정에서 왼쪽 손가락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뇌의 구역들이 더 커진다고 합니다. 성인기가 되어서도 연결의 강화나 가지치기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거의 모든 변화는 맨눈으로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당신의 모든 경험 각각은 당신 뇌의 물리적 구조를(유전자들의 발현부터 분자들의 위치와 뉴런들의 구조까지) 바꾼다. 당신이 태어난 가정, 당신의 문화, 친구들, 직업, 당신이 본 모든 영화, 당신이 나눈 모든 대화,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신경계에 흔적을 남긴다. 이 지워지지 않는 미시적 각인들이 모여서 지금의 당신을 만들고 미래의 당신을 제약한다."
'인지 유지력'(노년기)
노년기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뇌의 병리적 상태와 인지기능 쇠퇴를 경험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뇌에 직접적이 변화를 야기하는 병리적 상태에도 인지기능을 잘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신경조직이 병들었지만 인지적 증상이 없는 피험자들은 이른바 '인지 유지력 cognitive reserve'을 개발했다. 뇌조직의 일부 구역들이 퇴화하는 동안, 다른 구역들이 잘 훈련되어 퇴화한 구역들의 기능을 벌충하거나 넘겨받은 것이다. 뇌를 인지적으로 건강하게 유지할수록 (전형적인 방법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비롯해 신선하고 어려운 과제들을 뇌에 부과하는 것이다) 신경망에서 A 지점과 B 지점을 있는 새 도로들이 더 많이 형성된다.
뇌를 연장통에 비유할 수 있다. 좋은 연장통에는 당신의 작업에 필요한 연장들이 다 들어 있을 것이다. 볼트를 풀어야 한다면, 당신은 깔깔이(래칫핸들 auche handle)를 꺼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깔깔이가 없다면, 당신은 스패너를 집어들 것이다. 스패너도 없다면, 집게로 작업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지적으로 건강한 뇌에서도 마찬가지다. 병으로 많은 경로들이 퇴화하더라도, 뇌는 다른 해법들을 찾아낼 수 있다.
연구에 참여한 수녀들의 뇌는 우리가 뇌를 보호하고 최대한 오랫동안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노화 과정을 멈출 수 없지만, 우리의 인지적 연장통에 들어 있는 모든 솜씨들을 발휘함으로써 노화를 늦출 가능성은 열려 있다.
우리의 뇌는 일부 구역의 기능이 퇴화하더라도 다른 구역의 뉴런과의 새로운 연결(우회로)을 형성하거나 강화라는 방식으로 기능을 보존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뇌의 '인지 유지력'이라고 부릅니다. 인지 유지력 또한 신경가소성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경가소성과 인지 유지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연구팀은 단서를 찾고자 피험자들에 관한 데이터를 다시 살펴보았다. 베넷은 심리적• 경험적 인자들이 피험자의 인지 능력 상실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인지 능력을 발휘하는 십자말풀이, 독서, 운전, 새로운 솜씨 학습, 책임감 보유 등 뇌를 활발하게 유지시키는 활동들이 그 능력을 보호하는 효과가 컸다. 사회 활동, 사회적 관계망과의 교류, 신체 활동도 마찬가지였다.반대로 외로움, 불안, 우울, 심리적 고통에 잘 빠지는 성향 등의 부정적인 심리적 인자들은 인지 능력 쇠퇴를 가속하는 경향이 있었다. 성실성, 확고한 삶의 목적, 부지런한 생활의 유지와 같은 긍정적 특징들은 인지 능력을 보호하는 효과를 냈다."
나는 누구일까?
너무 깊게 탐구하면 할수록 오히려 본질과는 더 멀어지는 것 같은 대상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나'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무엇으로 설명하는 것을 선호하시나요? 성격분류나 성향이 될 수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강점, 앞으로의 목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나 신념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뇌과학 책인 만큼 기억이나 의식도 다루고 있습니다. 과연 기억과 의식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나는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것과 걸어온 행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 기억의 총합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에 무언가를 기억하는 능력이 없다면 어떤 사물을 보고 "그것이다"라고 알아볼 수 없는 것처럼, 나를 "나다"라고 인지하는 것도 불가능할 테니까요. 즉 기억은 나의 고유한 경험이 녹아있는 것이며 인식의 틀이자 재료이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가치관이나 신념이라는 것도 유지되어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도 기억은 필수적인 기능일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기억은 나를 구성하고, 현재를 인식하며, 미래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다른 것과 나를 구분해 주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기억이라는 그렇게 믿을만한 것일까요? 기억이 만약 불완전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라면 기억을 나의 본질로 삼아 나를 정의하는 것도 상당히 위태로워 보입니다. 뇌과학은 적어도 기억이라는 것이 불완전하며 심지어는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억의 오류 가능성
"... 로프터스는 피험자들을 모집하고 그들의 집에 연구원을 보내 그들의 과거 정보를 수집했다. 이 정보를 토대로 해서 연구자들은 피험자 각각의 유년기에 관한 이야기 네 개를 구성했다. 세 이야기는 진실이었다. 그러나 넷째 이야기는 그럴싸 한 정보를 포함했지만 완전히 허구였다. 그 이야기는 어릴 적에 쇼핑몰에서 미아가 되었다가 어느 친절한 어른의 도움으로 결국 다시 부모를 만나게 된 일에 관한 것이었다.
연구자들은 피험자들과 대담하면서 네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적어도 피험자 네 명 중 한 명은 자신이 쇼핑몰에서 미아가 되었던 일을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로프터스의 설명을 들어보자. "때때로 피험자는 그 일을 약간 기억해 내기 시작해요. 하지만 일주일 뒤에 다시 만나면, 피험자는 더 많은 것을 기억해 내기 시작하죠. 어쩌면 피험자는 미아가 된 자신을 도와준 중년 여인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도 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세부 사항들이 가짜 기억 속으로 끼어들었다. "그 나이 든 아주머니는 이런 이상한 모자를 쓰고 있었어요.""난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을 들고 있었죠." "우리 엄마가 어찌나 화를 내던지." 요컨대 새로운 가짜 기억을 뇌에 주입하는 것이 가능할뿐더러, 사람들은 그 가짜 기억을 끌어안고 치장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정체성에 상상을 엮어 넣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신뢰할 만한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재구성의 산물이며, 때로는 신화에 가까울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는 모든 세부 사항들이 정확하지는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부 세부 사항은 사람들이 들려준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 어떤 부분은 반드시 일어났어야 한다고 우리가 생각한 바를 내용으로 삼는다. 따라서 만일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이 단순히 당신의 기억에 기초를 둔다면, 당신의 정체성은 기이하고 불안정하며 미완성인 이야기와 유사하게 된다."
Chat GPT나 Gemini와 같은 생성형 AI가 작동하는 원리는 '빈칸 채우기'라고 합니다. 어떤 말 뒤에 이어질 가장 적절한 단어를 확률적으로 계산하여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기본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AI가 가장 일으키기 쉬운 오류 중 하나가 바로 '할루시네이션'입니다. 우리의 기억의 경우에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회상할 때 전체 퍼즐이 완성된 채로 떠올려지는 것이 아닌 부분적으로 군데군데 비어있는 퍼즐이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채로 떠올려지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비어있는 부분은 가장 그럴싸한 것으로 채워 넣거나 심지어는 전혀 없던 사실이나 에피소드를 끼워 넣고 그 사실에 대한 감정까지도(어쩌면 정체성의 형성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재구성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말대로라면 할루시네이션으로 얼룩진 사실이나 감정으로 이루어진 경험, 즉 기억이라는 것을 기반 위에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을 쌓아 올리는 것은 어쩌면 '전도몽상'인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기억의 기능과 역할을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기억이 그런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그저 과거의 기억과 감정에 지배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주체'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변은 이 책의 모든 챕터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 나의 인식 체계, 내가 생각하는 나와 실제 작동하는 나,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고찰도 필요할 테니까요. 이 모든 것을 안다고 해도 아마 나를 정의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첫 번째 챕터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우리 각자는 고유한(우리의 유전자들과 경험들에 의해 정해지는 궤적 위에 있으며, 그 결과로 모든 뇌는 제각각 다른 내적인 삶을 가진다. 눈송이들이 제각각 유일무이하듯이, 뇌들도 그러하다.
당신의 뉴런들이 수조 개의 연결을 끊임없이 형성하고 재형성하면서 독특한 패턴을 이룬다는 사실은 당신과 유사한 존재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지금, 당신이 의식적으로 알아채는 경험은 당신 특유의 것이다.
그리고 물리적 재료가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우리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우리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미완성 작품이다.
2. 실재란 무엇일까?
움베르토 마투라나(Humberto R. Maturana)라는 인지생물학자는 그의 저서 [있음에서 함으로]에서 생물을 비행기로 비유합니다. 비행기에는 수많은 계기판들이 있고 조종사는 계기판들이 전달하는 신호를 기초로 비행기 외부의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대응하며 비행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물의 뇌라고 할 수 있는 조종사들이 결코 외부환경을 직접 경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수많은 센서들이 전달하는 신호를 통합하여 구성된 정보만을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아래의 '비행기 비유'는 2장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종사들이 조종실에 앉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외부 세계에 직접 접근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들은 측정값들과 표시기들을 기초로 해서 행동하고, 수치들이 변하거나 또는 수치들의 특수한 조합들이 나타날 때 자신들의 계기들을 이용한다. 그들은 적절한 수치들을 지정된 한계들 내에서 유지하기 위하여 감각운동적 상호 관계들을 설정한다. 비행기가 착륙하면 비행기가 도착하는 것을 지켜보았던 친구들과 동료들이 나타나서는, 짙은 안개와 위험한 폭풍우 속에서 조종사들이 성공적이고 훌륭하게 착륙한 것에 대해 축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종사들은 당황해하면서 이렇게 물을 것이다. "폭풍우라고? 안개라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는 단지 우리의 계기들을 다루었을 뿐이라고!" 알다시피 비행기 외부에서 일어난 것은 비행기 안의 작동적인 동학과는 관계가 없으며,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 있음에서 함으로 / 움베르토 마투라나 ]
[더 브레인]에서 저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뇌는 외부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두개골이라는 캄캄하고 고요한 방 안에 밀봉된 당신의 뇌는 외부 세계를 직접 경험한 적이 전혀 없으며 앞으로도 영영 그러할 것이다.
대신에, 바깥세상의 정보가 뇌로 진입하는 길이 딱 하나 있다. 그 길이란 당신의 감각기관들 (눈, 귀, 코, 입, 피부)인데, 그것들은 번역가의 구실을 한다. 감각기관들은 마구 뒤섞인 정보 원천들(이를테면 광자, 공기 밀도의 파동, 분자들의 농도, 압력, 표면의 결, 온도)을 감지하여 뇌에서 통용되는 정보인 전기화학적 신호로 번역한다....... 뇌는 방대한 전기화학적 패턴들을 어떻게 세계에 대한 유용한 지식으로 변환하는 것일까? 다양한 감각기관에서 들어오는 신호들을 비교하고 패턴을 감지함으로써 뇌는 '바깥세상에 무엇이 있는지 최선의 추측을 한다."
뇌는 두개골이라는 캄캄하고 고요한 방에서 번역가인 감각기관들의 전기화학적 신호를 기초로 바깥세상을 최선을 다해 추측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감각기관들이 보내주는 신호의 의미를 뇌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과정과 '내부 모델'에 대한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각을 위해서는 눈 말고도 많은 것이 필요하다
시각이란 눈에 들어온 광자들을 뇌의 피질이 손쉽게 해석하는 활동이 아니다. 오히려 시각은 온몸이 참여하는 경험이다. 뇌로 들어오는 신호들은 훈련을 거쳐야만 유의미하게 해석될 수 있고, 그 훈련은 그 신호들을 우리 활동의 감각적 귀결들과 비교하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만 우리의 뇌는 시각 데이터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할 수 있게 된다.
만일 당신이 날 때부터 어떤 방식으로도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없었다면, 감각 정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되먹임(foodback) 과정을 통해 알아낼 수 없었다면, 이론적으로 당신은 시각 능력을 절대로 획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기가 침대 울타리에 부딪히고 장난감을 깨물고 블록을 가지고 놀 때, 아기는 그저 탐험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 시스템을 훈련하는 것이다. 세계로 내보낸 행동(이를테면 머리 돌리기, 장난감 밀치기, 블록 떨어뜨리기)이 시각 입력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어둠 속에 갇힌 뇌가 학습하는 것이다. 시각 훈련은 방대한 실험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눈을 통하여 시각정보를 얻었다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학습하기 위해서는 다른 감각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만약 어떤 물건의 모서리를 최초로 보았고 "그 부분에 부딪히면 아프겠다"라는 것을 학습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만져보고 부딪쳐보는 촉각적인 경험 없이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리고 역으로 만졌을 때 뾰족한 느낌이 드는 것은 눈으로 보았을 때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도 되먹임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즉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받은 신호들의 의미학습과 해석에는 다른 감각기관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각들이 끊기면 쇼는 중단될까(내부모형)
만약 카메라의 렌즈가 빛을 내부의 필름까지 전달하지 못한다면 필름에는 아무런 상도 맺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뇌도 그럴까요. 짐작할 수 있겠지만 뇌는 외부의 신호에만 의존하는 수동적인 기관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뇌는 외부의 신호를 수신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만들어 내는 활동을 훨씬 많이 한다고 합니다. 이 신호들을 내부모형(internal model)이라고 합니다. 내부모형은 뇌가 외부세계에 대하여 예상하는 바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뇌의 해부학적 구조에서 내부 모형의 토대를 볼 수 있다. 시상은 머리의 앞쪽, 양 눈 사이에 있고, 시각 피질은 머리의 뒤쪽에 있다. 거의 모든 감각 정보는 시상을 통과하여 적절한 피질 구역으로 이동한다. 예컨대 시각 정보는 시각 피질로 이동한다. 따라서 시상에서 시각 피질로 가는 연결선들은 개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연결선, 곧 시각 피질에서 시상으로 가는 연결선은 무려 10배나 더 많다."
"세계에 관한 상세한 예측들, 다시 말해 외부 세계에 있으리라고 뇌가 '짐작하는 바는 시각 피질에 의해 시상으로 전달된다. 그러면 시상은 그 예측들을 눈에서 오는 정보들과 비교한다. 만일 예측("내가 고개를 돌리면 의자가 보일 것이다.")과 정보가 일치하면, 시각 시스템으로 되돌아가는 신호는 매우 적게 발생한다. 시상은 단지 눈이 알려주는 바와 뇌의 내부 모형 사이의 차이만 보고한다. 바꿔 말해 시각 피질로 되돌아가는 신호의 내용은 뇌가 예상한 바의 결함(오류'로도 불림), 곧 뇌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다. 요컨대 어느 순간이든 우리의 시각 경험은 눈으로 들어오는 빛보다 머릿속에 이미 있는 것에 더 많이 의존한다."
실재라는 환상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볼 때, 우리가 실재라고 믿는 것이 그것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외부의 무언가가 발생시키는 신호를 모두 받아들이는 것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시각이 받아들이는 신호는 가시광선에 해당할 텐데 이는 전체 전자기파의 10조 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우리의 내부모델은 그다지 촘촘하지 않은 그물과 같아서 배제되는 세부정보가 훨씬 많다고 합니다. 아래는 실재라는 것에 대한 저자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외부 세계를 직접 경험하며 산다고 느끼지만, 우리가 상대하는 실재는 궁극적으로 어둠 속에서, 전기화학적 신호들로 이루어진 낯선 언어로 작성된다. 방대한 신경 연결망들에서 일어나는 활동이 당신의 이야기로, 곧 당신의 사적인 세계 경험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당신이 손에 쥔 이 책의 촉감으로, 방 안의 빛으로, 장미꽃 향기로, 타인들의 목소리로 말이다.
한층 더 기이한 것은, 모든 각각의 뇌가 약간씩 다른 이야기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 사건을 여러 사람이 목격할 경우, 목격자들의 뇌들은 제각각 다른 주관적(사적) 경험을 한다. 지구상에 돌아다니는 인간 뇌는 70억 개(동물 되는 몇 조 개)이므로, 단일한 실재 버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각의 뇌는 나름의 진실을 품고 산다."